2024.05.15 (수)
김상훈 수필가 나는 그렇게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행복했던 유년기를 보냈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1950년6·25전쟁 이전과 이후 우리나라는GDP가 세 자릿수가 되지 못하는 세계 최고의 빈곤 국가였습니다. 그렇지만 배가 몹시 고팠거나 도시락을 못 싸갔던 기억은 없습니다. 다만, 똑같은 음식이 입에 물려 신물이 났던 기억은 생생합니다.전 국가적으로 식량이 부족했던 시기이다 보니 어느 특정 계절엔 보리밥만 지겹도록 먹었던 그런 기억 말입니다. 그런데 그 보리밥도 그런대로 먹을 만했지만...
김상훈 수필가 나에게는 붕우회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벗 붕(朋)에 벗 우(友) 자 즉, 최고의 친구라는 뜻을 가진 모임입니다. 1975년에 결성됐으니까 어언 47년의 세월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동안 이런저런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꾸준히 만나고 있으니 한 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더불어 나의 생이 끝날 때까지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버리려야 버릴 수도 없는 친구들과의 모임입니다. 모임의 결성 당시에는 파릇파릇 혈기왕성했던 우리는 이제 만나면 건강과 손주 녀석들의...
김상훈 수필가 요즘 젊은이들이 어른을 공경하는 모습은 처녀 얼굴에서 수염 찾기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시대적 현상인지 세대 갈등인지 따지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어른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젊은이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입니다. 어느 쪽의 잘못이라고 지적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인 듯합니다. 아울러 한쪽을 비판하거나 옹호할 수도 없는 문제라서 이 상황은 상당한 우려를 안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과거보다 핵가족이나 결손가정이 많이 생겨난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으론 이 문제는 젊은이들이 상상력이나 의...
김상훈 수필가 모든 면에서 미흡하고 부합하지도 못했던 아비이었지만, 너는 나의 마음을, 나는 네 마음을 서로 알고 있다는 데는 너도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동의할 수 있겠니? 동의한다면 38년 동안 너와 나의 부자로서의 갈등과 반목, 그리고 분노와 서운함은 저 태평양의 깊고 푸른 물속에 영원히 수장시켜 버려라. 그리고 솟아올라 미지의 세계로 비상하는 비행기의 양 날개에 새로운 희망과 꿈을 실어라. 그리하여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너의 가족, 새넌과 재이를 뼛속 깊이 각인시켜 그 미지의 미국 땅에 터를...
김상훈 수필가 ‘수지오지자웅(誰知烏之雌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구분하리오라는 말입니다. 까마귀의 암·수는 식별할 수 없으니 그놈이 그놈이라는 속된 의미가 있습니다. 꿩이나 닭은 암컷과 수컷을 바로 알 수 있지만, 까마귀는 온몸이 검은 데다가 크기도 고만고만해서 보통사람의 눈으로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을 빗댄 말로 그×이 그×이라는 속된 의미를 담고 있고 겯들어 비둘기나 까치도 암수 구분이 되지 않는 과의 조류입니다. 6·1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
김상훈 수필가 양보하기 1 같이 늙어 가면서도 나름의 매력을 풍기는 아내가 있고 하루가 다르게 늙은이로 변해가지만 같은 추억과 같은 비밀과같은 희망을 공유하는 친구가 여럿 있습니다. 또, 부담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카톡도 할 수 있는여자친구도 더러 있으니 나는 참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구나 , 하고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아내나 친구들과 아주시답잖은 일로 티격태격 말싸움을 해서서먹서먹 해 지거나 서운한 마음으로아웅다웅 다툴때가 가끔 있습니다. "친구를 적으로 만들고 싶으면 친...
김상훈 수필가 오늘은 필자가 웃음치료사로 활동하던 시절에 즐겨 사용했던 부부싸움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하면서 익살을 좀 부려 볼까 합니다. 요즘 복지관에 다니시는 분들 많죠? 그 복지관 교육에 열정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시는 건망증이 좀 있지만, 유머와 언어 감각으로 내공을 다지고 계시는 한 할머니가 친정집과 시가집(시댁)이라는 말로 삼행시를 지었습니다. 친 : 친절하고 정 : 정도 많고 집 : 집도 넓었지 이렇게 친정집의 정겨움과 그리움을 읊어서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반면, 시가집...
김상훈 수필가 매년 4월 둘째 주 토요일과 10월 둘째 주 토요일은 우리 7남매가 모이는 날입니다. 4월은 칠성회(七星會)를 하는 가족 모임의 날이고 10월은 숭모(崇慕)의 날이라고 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날입니다. 지난 (2019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은 우리 7남매가 태안으로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와 내 위의 형님 부부 그리고 동생 내외만 60~70대이고 다른 형님과 형수님 들은 70대 말이거나 80을 훌쩍 넘긴 고령입니다. 큰 형님과 둘째 형님 부부가 작년과는 확연히 건...
김상훈 수필가 소년기에는 담임선생님께서 처칠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덩달아 처칠을 좋아했고, 청년기에는 따르고 싶었던 선배가 셰익스피어와 바이런의 시를 줄줄이 외우고 다녀서 또 그들을 좋아했고, 성장해서는 여자 친구가 로미오를 입에다 달달 달고 다녀서 실존인물도 아닌 로미오와 줄리엣을 좋아했던 나는 내 인생의 대부분을 뼛속까지 영국을 좋아했던 것을 고백합니다. 따라서 셰익스피어기념관, 빅토리아궁, 버킹엄궁, 국회의사당 앞의 템즈강의 다리를 거닐 때는 얼마나 그들의 전통과 질서, 저력과 성취 등에 동감하면서 부러...
김상훈 수필가 런던에서의 첫날 밤, ‘레이먼드 쇼’가 유명하다고 하여 담당한 가이드의 안내로 지하철을 타고 쇼를 보러 갔습니다(1인당 100불, 당시 환율로 8만 원 정도). 그렇지만 결국 사기를 당해 쇼는 구경도 못 하고 불쾌한 기억만을 안고 돌아왔던 잊고 싶은 기억이 있습니다. 또한, 왜 런던의 지하철은 그토록 많은 쓰레기와 오물투성이로 불결했던지 지금도 의문이 가시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런던은 적어도 나의 기억에는 반 정서적인 곳으로 낙인이 찍혀 참으로 애석한 마음입니다. 이튿날은 그 이름도 찬란...
김상훈 수필가 안개 짙은 런던의 워털루 다리 위에서 로이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그만 가슴이 턱 막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군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멋진 콧수염 속으로 뭔가 우수에 찬 쓸쓸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중학생 때 보았던 영화 ‘쿼바디스’와 ‘원탁의 기사’ 이후로 나를 완전히 사로잡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외국의 미남 배우들을 보았지만, 그처럼 단정하고 고전적인 미소와 표정을 가진 배우는 썩 드물었습니다. 더구나 상대역으론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 ‘비비안 리’였으니 더 이상...
김상훈 수필가 조선 시대에는 수많은 시인 묵객, 풍류객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각기 자신만의 독특한 재능이나 기행으로 후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지만, 저는 그중 최고의 풍류객으로 나주의 백호 임제(白湖 林悌, 1549~1587)를 꼽고 싶습니다. 5도 절도사, 훈련원판관을 지낸 아버지를 두었던 그의 짧은 생애 중 초년은 술과 여인을 탐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20이 넘어서 학문에 뜻을 두어 늦은 나이에(1577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지만, 당시의 폐해인 당쟁에 휘말리기를 꺼린 탓으...
김상훈 수필가 아내는 귀걸이 목걸이 등으로 치장하거나 수집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귀걸이를 하기 위해서 귀를 뚫었다거나 눈썹에 문신했다거나 그런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바람 불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긴 소매 옷을 꺼내려고 장롱 서랍을 열었을 때 여태껏 보지 못했던 아내의 작고 예쁜 손가방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웬 손가방? 하는 호기심으로 열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뜻밖에도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의 금붙이와 액세서리 몇 점이 있었습니다. 아마 장모님의 유품이거나 ...
김상훈 수필가 부자유친이란 유교의 실천덕목인 오륜(五倫)의 하나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의 유명인사 한 분이 부자유친을 삼행시 형식의 사행시로 읊었습니다. 부 : 부드럽고 자 : 자상하고 유 : 유연하고 친 : 친절하게 저도 삼행시라면 지나칠 수가 없어 동행하는 마음으로 한 수 읊어 보았습니다. 부 : 부모와 자 : 자식은 유 : 유난히 친 : 친밀해 평이하지만 최소한의 의미는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요즘은 부자지...
김상훈 수필가 어제는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받고 싶은 생일선물을 주문하면 다 들어 주겠노라고 통 큰 선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거창한 선언과는 달리 다음과 같은 아내의 짧고 소박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날 가서 말할게요." 사실은 작년에도 장미꽃 한 송이와 작은 케이크 하나로 어물쩍 넘어갔던 것이 마음에 걸려 꺼림칙했던 터라 올해는 아내가 갖고 싶어 하는 선물은 꼭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딱히 선물 같은 것은 굳이 바라지 않는 듯했습니다. 평소의 성품으로 보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