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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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회는 웅천 생활형 숙박시설 조례 개정안이 공정한지 숙고해야이현종(전)여수시민협 공동대표, (전)여천고 교사, (현)여수교육회의 대표 몇 해 전에 시청에 전화를 걸어 아파트 정문을 대로변으로 바꿀 수 있느냐고 물었다. 현재의 정문은 좁은 골목으로 연결되어 아침 출근길에 차가 정체되곤 하기 때문이다. 담당 공무원은 교차로와의 거리 규정이 있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럼 이웃하는 아파트는 그 규정을 무시하고 특혜를 준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남의 일을 빌미로 트집잡는 것 같아 그냥 수용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그 사회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그래서 시민은 세금을 내서 정부를 구성하고, 그 정부에 권한을 위임하여 사회 구성원 누구나 공정한 권익을 누릴 수 있도록 조치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만일 공정해야 할 정부가 위임된 권한으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채우거나, 특정인에게 혜택을 주는 조치를 취한다면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정의는 무너지고, 만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정글집단으로 전락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집앞에 정거장을 세워주라 요구하고, 자신의 집앞에 주차장을 만들어주라 요구하고, 자신의 땅이 있는 곳으로 길을 내주라 요구할 것이다. ‘서울-양평’ 간 고속도로 종점 위치가 바뀌었는데, 바뀐 위치가 마침 윤석열 대통령 처가의 땅이 있는 곳이라 한다. 만일 대통령 처가에 특혜를 주기 위해 일부러 바꾼 것이라면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공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위임해준 권력을 특별한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위임된 권력은 다시 회수하는 것이 마땅하다. 여수에서도 유사한 일을 시도하려는 조짐이 있어 안타깝다. 웅천에 생활형 숙박시설로 인가된 건물을 일반 오피스텔로 전환하기 위해 주차장 기준을 완화하도록 조례를 개정하려고 한다. 특정 집단을 위해 한시적으로 말이다. 생활형숙박시설은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 분양받는 주거시설과는 달리 주택법이 아닌 건축법 적용을 받아 주차장과 학교등 공공시설 설치의무, 기반시설기여금 부담이 감면되는 경제적 혜택을 누린다. 다시 말하면 숙박시설로 인가되었기에 주거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온전히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생활형 숙박시설을 오피스텔이나 일반 공동주택으로 전환하려면 주차장법, 주택법, 소방법, 정보통신법, 장애인법 등에 적합하도록 시설을 보완해서 변경 신청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그 비용을 들이지 않으려고 법을 바꾼다면 그건 특혜이다. 특정 집단에 특혜를 준다면 원칙이 무너지는 세상이 될 것이다. 시민 누구나 시장을 찾아가고, 의회를 찾아가서 나에게도 특혜를 주라고 요구하면 무슨 말로 막을 것인가? 그것을 막고자 시민들은 세금을 내서 정부와 의회를 구성하고, 공정한 행정과 감시를 요구하는 것이다. 조례 개정안이 시의회에 발의되어 행정부의 의견을 묻고 있다하니 그 공은 시장과 시의회에 넘어갔다. 시장과 시의원들이 공정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이 조례 개정 발의는 폐기되거나 회의에서 부결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통과된다면 여수시는 소수 특정 집단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다수의 여수 시민을 배신한 꼴이 된다. 정치인에 대한 시민의 불신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생긴다. 깊이 생각하여 행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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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제언이현종 (전)여수시민협 공동대표, (전) 여천고 교사, (현)여수교육회의 대표 과거의 역사를 살피지 못하면 전철(前轍)을 밟게 된다.그래도 어리석게 꼭 그 길을 그대로 가는 정치인들이 있다.권력에 도취되면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이승만이 걸었던 길부터 보자.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이승만에게는 눈에가시였던 김구, 여운형 등이 불의한 총탄에 쓰러졌다. 조봉암에게는 판사가 사형을 선고해주었다. 그리고 신익희는 뇌일혈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이승만의 정적들이었던 그들의 죽음에 이승만이 얼마나 개입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승만은 매우 만족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승만은 불행했다. 결국은 국민들이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끝내는 외국으로 쫓겨나야 했다. 박정희는 어찌하였던가?그는 집권을 하자 많이 불안하였는지 자신처럼 만주에서 일본군으로 활동하던 인맥을 비롯한 친일파를 대거 중용하였다. 반면 함석헌,장준하 이런 사람들은 적대시하였다. 함석헌에게는 그가 내던『씨ᄋᆞᆯ의 소리』를 폐간시키고 감방에 잡어넣기도 하였다. 장준하는 의문사하였다. 박정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정치적 대립각에 섰던 김영삼과 김대중에게도 못할 짓을 하였다. 김영삼에게 테러도 하고,국회에서 제명도 시켰다. 김대중에게는 더했다.빨갱이로 몰아서 정치적 생명을 끝내려고 온갖 공작을 시도한 것은 물론이고, 교통사고를 위장한 살해 공작과 납치를 하여 수장시키려는 어마무시한 살해 공작을 펼쳤다. 그러나 끝내는 본인이 먼저 부하의 총탄에 쓰러지는 불행을 맞이하였다. 전두환은 어찌하였던가? 김대중을 제거하려는 음모는 박정희에 이어서 계속되었다. 자신이 주도하여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어놓고 그 책임을 김대중 등 민주인사들에게 덮어씌워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게 했다. 그러나 전두환 자신이 결국은 감옥에 갇히는 것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국민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이명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검찰을 시켜 전 대통령 지우기에 부지런하였다. 그때 나온 말이 논두렁시계다. 그는 거짓말 또한 상습적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도 검찰과 합작하여 거짓말로 국민을 속일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끝내는 그 또한 감옥에 갇히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끝이 안 좋았다. 끝이 안 좋았던 그런 대통령이 또 한 명 있다. 박근혜이다. 끝이 안 좋았던 그들 모두는 공통점이 있다. 국민을 우습게 보았다. 내 보기에 그들은 정적 때문에 불행한 결말을 맞은 것이 아니라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모두가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그들은 국민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사랑했고, 정치보다는 권력놀이를 하고 싶어했다. 이렇게 여러 차례 검증된 전철을 그래로 밟는 정치인이 또 있다면 그가 맞을 결과 또한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불행해지지 않는 정치를 할 수 있을까? 최소한 이미 검증된 전철은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또 전철을 밟는 정치인이 나올 것 같다고들 한다. 대화의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 그 적을 제거하기 위해 온힘을 쏟고 있다면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민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차별을 조장하고, 편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다면 그 또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딱하다. 눈에 보이는 그 길을 따라가고 있다면 참으로 딱한 일이다. 무릇 정치는 국민들 간에 갈등이 있으면 화해시키고, 차별이 있으면 걷어서 나눠주고,편을 가르면 서로 존중하게 하고,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 못하겠으면 최소한 염치라도 있어야 한다. 맹자는‘사람이라면 염치가 없을 수 없다(人不可以無恥)’라고 했는데 염치마저 없다면,그들이 불행하게 된들 누가 그들을 가엾이 여기겠는가? 그래서 심히 걱정스럽다. 국민 말이다. 그 정치인이야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걱정해줄 필요가 없다.문제는 국민이다. 국민의 삶이 힘들어지니 걱정스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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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의 언론, 대한민국의 언론이현종 전)여수시민협 공동대표,전)여천고 교사,현)여수교육회의 대표 워터게이트 얘기를 한 번 더해보자.사건을 여론화시킨 워싱턴 포스트의 두 명의 기자,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을 빼고 워터게이트를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두 기자는 닉슨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파헤쳐 닉슨을 사임으로 몰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은FBI가 직접 수사에 착수하였지만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되자 점점 여론의 관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민주당쪽에서도 실질적인 피해는 없다면서 이 사건을 크게 문제시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기자는 무려 3년 동안 오로지 이 사건에만 매달렸고 결국 거대한 권력을 가진 닉슨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냈다. 이는 언론의 역사까지도 바꿔놓았다.한 가지 문제를 장기간에 걸쳐 심층 취재하고 보도한 것은 속보 경쟁만 하고 있던 미국 신문과 방송에 일대 경종을 울렸고,이는 탐사보도 저널리즘을 탄생케 한 계기가 되어 언론의 방향을 틀어놓은 것이다. 물론 여기엔 당시 워싱턴 포스트 편집국장이었던 브래들리와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였던 그레이엄의 역할도 있었다.브래들리는 상당한 위험성과 폭발성을 가진 사건 기사를 냉철하게 편집해 그 과정을 진척시켰고, 사주인 그레이엄은 워싱턴 포스트의 붕괴를 각오하고 두 기자를 보호하며 외풍에 맞섰다. 이쯤 얘기했으면 우리나라의 대부분 언론인이 왜 기레기취급을 받고 있는지 간파하였을 것이다. ‘기레기’는 기자를 비하하는 말이다.그 단어 속에는 단순히 기자를 비하하는 의미만 들어있는 게 아니다.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하는 언론사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총체적으로 집약되어 있다. 이번 대통령 동남아 순방 과정에서 기레기를 기레기로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이 MBC기자에게 국가비행기의 탑승권을 빼앗자 한겨레와 경향 신문 기자들도 이에 항의하여탑승을 거부했다. 그런데 다른 기자들은 얼뜨기처럼 그 비행기를 타고 갔다. 순방지에서도 그 수준은 변하지 않았다.다른 나라 기자들 다 하는 회담장 취재도 못하게 하니 안하였고, 대통령실에서 건네준 자료로 보도를 하였다. 심지어 김건희 여사의 행보는 당사자측이 찍어서 전달해준 사진만 보도하였다. 이 정도면 왜 기자들이 따라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정신 박힌 언론인이라면 그런 꼭두각시 보도는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다. 이처럼 받아쓰기나 하고,남의 기사 베껴쓰기나 하고 있으니 언론이 언론다워질 리 없다. 언론의 본질이 무엇인가?언론은 사건과 정보를 해석하고 평가함으로써 정의로운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또 정부나 기업 혹은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단체들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언론이 그걸 못하면 그 사회는 독선과 부패로 엉망이 되고,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되고 만다.참 언론인 송건호는 진실 보도를 위해 사물의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하고,역사 발전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며, 인과 관계를 밝혀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최소한 기자가 기자다우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그리고 양심적이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무능한 언론인들이여,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을 때 당신들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했다면304명의 생명을 살려낼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부패한 언론인들이여, 외한보유고가 누군가의 호주머니로 새어나가고 있을 때 당신들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했다면IMF는 겪지 않을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의 비열한 언론인들이여,전두환이 공수부대를 시켜 광주를 짓밟을 때 당신들이 제대로 취재하고 보도했다면 무자비한 시민학살은 막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기자들과 언론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선별,확대,축소는 물론 조작 뉴스까지도 서슴치 않는 한국언론의 왜곡보도는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국민을 조롱하는 악마스러운 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물론 정권과 자본과 언론사주 등 기득권 세력의 반민주적 의식과 억압도 문제이다. 최근 한심스러운 작태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국민의힘당에서MBC광고 탄압까지 하려했다는 소식이다. 국민소득 500달러 시대인 1974년 박정희의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가 떠오른다. 국민소득은100배로 높아졌는데, 언론과 정치의식은 아직도 50년 전의 미개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국민의힘 정권은 언론이 자신들의 나팔수 노릇이나 하는 기레기 수준에 머물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모두 사라져야 할 유물이다. 한 가지 더 얘기하자.요즘 패널을 배치한 토론 방송이 많다. 나름대로 공정의 틀을 지키려고 그러는지 양쪽의 패널을 같은 수로 배치하고 같은 발언 시간을 주어 토론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형식의 평등일 뿐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가식이다. 같은 말 반복하며 목소리만 높이는 억지스러운 토론,이제 진절머리 난다.진정한 언론이라면 사실과 거짓을 먼저 가리고,옹호해야 할 것과 비판해야 할 것을 가려야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심층 취재를 통해 진실을 밝혀 보도해야 한다. 대통령이 새벽까지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는 의혹이 제기 되었으면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심층취재를 하여 밝혀야지 그걸 공개한 사람을 두고 옥신각신 토론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은 조금 더 섬세하게 정의를 실천하려는 행위가 필요한 시대이다. 우리 국민이 뛰어난 축구선수 손흥민을 가졌듯이,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같은 훌륭한 언론인,그레이엄 같은 정의로운 언론 사주를 갖는 행운도 함께 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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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와 대통령의 거짓말이현종 전) 여수시민협 공동대표, 전)여천고 교사, 현)여수교육회의 대표 미국의 워터게이트,벌써50년 전의 일이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도모한 비밀공작원에 의한 도청 사건이다. 경찰에 체포된 범인들은 끝까지 단순 절도임을 주장하였지만, FBI의 수사와 청문회,특별검사,그리고 언론의 심층 취재로 범인은 고장난 도청기를 교체하기 위해 민주당 사무실에 침입한 전모가 밝혀졌다. 그 과정에서 닉슨은CIA에 사건 수사를 방해하고,증인 매수 및 입단속을 시키라고 명령하였지만 잘 되지 않았다.탄핵 직전까지 몰리게 된 닉슨은 자신 사퇴를 하게 되었다. 닉슨이 탄핵 직전까지 몰리게 된 것은 도청한 사실보다는 그것을 숨기려 한 거짓말 때문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닉슨은 당시 미국국민들에게‘사기꾼’의 이미지로 인식되었다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말이 장황해졌다.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 상기시켜보기 위함이다. 요즈음 우리나라 윤석열 대통령의 거짓말 의혹이 국민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서였다는 말도, 영국까지 가서 조문을 하지 못한 이유가 시간이 늦어서였다는 말도, 외교 무대에 가서‘이××’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말이나‘날리면’이라고 했다는 말들이 다 그렇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그 외에도 거짓말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은 많아서 다 열거하는 것이 부질없을 듯하다. 사정이 그러하니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청년들 지켜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아프고 무거운 마음 가눌 길 없다”라고 한 말도 믿어야될지 말아야될지 모르겠다. 각 종교 집회때마다 찾아가서 사과하는 것도 장난 같게만 보인다. 누구든 거짓말은 신뢰를 갖지 못하게 한다.신뢰받지 못하는 지도자는 어떤 조직도 이끌어갈 수 없다. 지도력은 타인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때 힘을 갖기 때문이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군대에서마저도 상급자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영이 서지를 않는다. 그렇게 되면 어떤 싸움에서도 이길 수 없다. 맹자가‘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하늘이 주는 좋은 때는 지리적(물리적)이로움만 못하고,지리적 이로움도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라고 한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이 그 지경으로 가는 듯하여 아주 걱정스럽다. 국민 중에 대통령의 말을 못믿겠다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담동 술자리 사건도 대통령은‘저급하고 유치한 가짜뉴스’라고 부정하지만,국민은 대통령이 거짓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 지경 되었으니 닉슨의 거친 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자도『논어』 「안연편」7장에서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는 제자 자공(子貢)의 질문에“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군사를 충분하게 하면 백성들의 믿음이 생길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자공이“부득히 셋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어느 것을 먼저 버리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군사”라고 답하였다. 다시 자공이“부득이 남은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어느 것이 먼저입니까?”라고 묻자 공자는“먹는 것을 버릴 것이니,예로부터 누구나 죽음은 있지만 백성들에게 신뢰를 못받으면 나라를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의 상황이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나라에서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현 대통령의 말에 대하여 갖는 의구심은 매우 심하여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할 수준이다. 취임 반년도 안 되었는데 지지율이30%아래로 떨어진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는 조금 서툴러도 신뢰가 있으면 기다려주고, 오히려 지켜주는 것이 우리 국민 아니던가? 그런데 신뢰가 없으면 내일을 알 수가 없다. 지지율을 회복하고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사뭇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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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감은 정치권 기웃거리는 사람 말고, 아이들 곁을 지키던 사람이 되어야!이현종 전) 여수시민협 공동대표, 전)여천고 교사 현) 여수교육회의 대표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 훗날 결함이 발견되었듯이,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그랬다. 세상에 절대적 진리는 없다. 과학자 황금호는『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이론의 오류』에서‘오류 없는 이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자연과학에서도 이러한데 인문학에서는 말하여 무엇하랴.절대적 진리를 담고 있는 법률도 없고,절대적 진리를 담고 있는 정치체제도 없다. 만일 어떤 면제가 진리라고 한다면‘오늘 현재까지는 그게 진리로 여겨진다.’라고 해야 맞다.내일 그 명제의 반례가 발견되어 부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과거의 지식을 암기시키는 주입식 교육을 교육의 전형으로 여겨 왔다.교사는 수업시간에 목이 터져라고 과거 지식을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로 여겨졌다.과연 과거의 화석화된 지식을 암기시키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어야 할까? 그렇다면 여기서‘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참다운 교사다.반면 단편적 지식을 암기시키는 주입식 교육은 이미 오류로 밝혀졌거나,내일 오류로 판명될 지식을 암기시키고 있는 꼴이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그렇게 해왔다.여기서‘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나와야 한다.. 자연과학에서는 수학적으로 사고하고,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길러주면 좋겠다. 인문학에서는 지혜롭게 판단하고,창조적으로 상상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객관식 평가로 흑백논리를 길러주는 교육이 아니라,주관식 문제로 다양한 사고를 인정하고 창조적 능력을 길러주는 평가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교육감의 생각이 열려있어야 한다.멋있게 시원하게 대답 잘하는 카리스마 있는 그런 교육감 말고 진중하고 변화를 존중하는 그런 교육감이었으면 좋겠다. 자기 확신이 강한 교육감 말고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그런 교육감이었으면 좋겠다.그래야 아이들에게 생기가 일어나고,창의성이 일어날 수 있다. 교육감은 어른들의 이권에 영합하지 않고, 아이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아이들의 기운을 살려내는 사람이라야 교육이 교육답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려면 최소한 자기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 아니라,아이들 곁에서 정성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사람이 교육감이 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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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석으로 아무것도 못한다면 전원 불출마 선언이 답이다이현종 (전)여수시민협 공동대표, (전)여천고 교사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낙선하고 나자, 지역 국회의원으로부터 고맙게도 ‘감사하고 죄송합니다.’라는 메시지가 왔다. 며칠 간의 시간을 두고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에 읽어보니 ‘대결과 분열의 낡은 기득권정치를 국민통합의 정치로 교체하고, 나라와 국민들의 삶을 바꾸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충분히 받들지 못했습니다.’라는 사과문부터 쓰여 있다. 멋있는 말이긴 하지만 듣고 싶은 말은 아니다. 그냥 인사로 하는 미사여구라 여기고 뒷부분까지 읽어보았다. 이어 윤석열 당선인께 축하인사를 건네고 국민통합의 정치를 기대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선거운동 과정에서 내세웠던 지역발전 공약을 필사적으로 챙기겠다.’라며 여러 가지 지역 현안 사업을 열거하였다. 끝까지 읽어보았지만 역시 듣고 싶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국민들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무엇이 중한지를 모르는 모양이다. 천만이 넘는 국민들이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촛불을 들었던 이유, 그리고 민주당을 집권당으로 만들어주고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몰아주었던 이유가 지역현안 사업이나 챙겨주라는 뜻이었을까? 물론 국회의원은 지역구 주민 투표로 선출되기 때문에 지역현안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국회의원의 역할은 ‘법률을 개정’하고,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확정’하고 ‘국정을 감사’하고, ‘대통령은 물론이고 행정부 공무원뿐만 아니라 사법부 공무원들까지도 견제하고 탄핵소추’할 수 있다. 이처럼 막강한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법률을 제개정’할 수 있는 권한이 가장 핵심이다. 그래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그 역할에 충실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필요하면 법개정이든, 국정감사권이든, 탄핵소추권이든 그 힘을 발휘하여 개혁을 하라고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만들어주었다.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검찰개혁, 언론개혁, 차별 없는 세상, 복지 사회 등을 실현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180석이라는 거대여당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절대로 권력놀이나 하라고 권력을 준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무능하고 게을렀다. 촛불의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아무것도 없었다.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이기 위한 것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특권을 누리고 유지하는 일에만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당의 트집잡기때문이라고 변명하지 마라. 180석의 권한을 활용하지 못한 것은 무능 혹은 나태라는 말 외에 어떻게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철저히 촛불 정신을 외면하고 국민을 무시한 행위다. 하기야 늘 특권층으로 살던 그들이 시민들이 왜 그 추운날 촛불을 들어야 했는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을까? 그리고 180석을 만들어준 국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을까? 20대 대선에서 정권을 수구당에 빼앗긴 책임은 180석 의석을 가지고 아무것도 아니한 여당국회의원들의 책임이 가장 크다. 그런데 앞으로는 희망이 있을까? 국회의원이 보낸 메시지로 보아서는 희망이 없다.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개혁을 기대하고, 그들에게 정의로운 행동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가? 그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다음 선거때 여당을 견제하기 위해 강한 야당이 필요하다고 지지를 호소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통탄스러운 일이다. 지난 주에 시민들은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다시 촛불을 들어야했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이런 구절이 떴다. 기억하나? 검찰개혁 약속한 민주당에 국민들은 간절함으로 180석을 몰아줬다. 기억하라! 국민들은 개혁을 바란다. 또 이런 주장도 있었다. 개혁을 반대하는 의원은 누구인가? 우리는 목숨을 걸고 당신을 낙선시키겠다. 개혁에 앞장 서는 의원은 누구인가? 우리는 사력을 다해 당신을 당선시키겠다. 남은 기간에라도 정의실현을 위해 검찰개혁, 언론개혁, 차별금지, 복지사회, 국회의원 특권폐지 등을 완성하라.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을 개혁하라. 하기 싫거든 불출마선언이 정답이다. 그것이 책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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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세요’이현종 (전)여수시민협 공동대표, (전)여천고 교사 내 나이가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얘기다. 젊은 교사 시절이라고 해야 맞겠다. 야간자율학습을 모든 학생에게 강제로 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자율적으로 희망자에게만 시켜야 하는지 교장과 의견이 대립되었다. 방과후 수업 문제에서도 그랬고, 흡연이나 두발 문제에서도 그랬고, 소지품 검사에서도 의견이 대립되었다. 가끔은 학교 시설 문제나 예산 집행 문제에서도 의견이 대립되었다. 그런 문제로 가끔은 교장실에 불리어 가기도 하고, 내 발로 찾아 간 적도 많았다. 요즈음이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것도 그 당시에는 상황이 달랐다. 당시에는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준다거나 과거에 해오던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불온하게 취급되거나 교장에게 반항하는 교사로 취급되었다. “교장선생님, 모든 학생을 밤에까지 강제로 학교에 잡아놓는 것은 시정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무슨 소리야.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를 시켜야지.” “공부시키는 거야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모든 학생을 밤늦게까지 강제로 의자에 앉혀 놓고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자율권을 박탈하는 것입니다.” “자율권을 주면 다른 학생들도 영향을 받아 학습분위기가 깨지니까 할 수 없네.” “학생들의 성격은 다양하여 어떤 학생은 강제로 앉혀놓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냅니다. 그 학생은 다른 학생들 때문에 희생되어야 할 도구가 아닙니다.” “이 사람이 나를 훈계하는 거야!” “아닙니다. 밤늦게까지 자율학습을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그 학생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쯤 되면 뒤에 나올 얘기는 정해져 있다. “젊은 사람이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어른이 하는 말에 그렇게 또박또박 말대꾸해야 되겠어.” 이때에 버릇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화제가 전환되어버리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결국 나만 버릇없는 젊은 교사가 되고 만다. 여기서 잘 판단을 해야 한다. 그 다음은 승복하거나 제대로 따지는 것이다. ‘죄송합니다.’라고 일어서서 교장이 바뀔 날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공과 사를 구분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학생들의 강제자율학습문제이지 제가 교장선생님께 도덕 교육 받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라고 따져야 한다. 교장은 토론에서 빠져나갈 아주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하였다. 인신공격을 통해 주제를 일탈시켜 답하기 난감한 문제에서 탈출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요즈음은 시절이 많이 변하여 그렇게 억지스러운 교장이 없는 듯하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정치판에서는 아직도 그런 꼬락서니를 가끔 본다. 20대 대선 후보 마지막 토론에서 윤석열 후보는 대장동 문제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상대방에게 ‘이거 보세요.’ ‘대선이 반장 선거입니까?’라고 윽박질렀다. 보통 대화에서 ‘이거 보세요’라는 표현은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꾸짖을 때 쓰는 표현이다. 막나가는 싸움꾼들의 입에서 나올 법한 표현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 토론에서 그런 표현이 나왔다. 그 상황은 윤후보의 계속되는 대장동 공세에 이후보가 ‘특검을 받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되더라도 책임을 지자’라는 제안을 하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윤후보는 그 제안을 받을지 안 받을지 대답하고 그 이유를 설명해야 맞다. 그런데 윤후보는 ‘대선이 반장 선거입니까?’라며 제안 자체를 부정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는 말투로. 토론에서 이런 방법은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을 할 만한 능력이 없거나, 논리적으로 파고 들면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될 때 쓰는 아주 교활한 수법이다. 토론 주제와 상관 없이 상대방의 도덕성에 꼬투리를 잡아 건드리거나, 상대방 주장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자라면 상대방의 질문에 동의하거나, 반대의견을 냈어야 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 두려워 그랬을 수도 있다. 동의하게되면 자신이 수사를 받게 되겠고, 반대하면 의혹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으로 ‘특검을 거부한 사람이 범인이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을 것이다. 그것도 한두 번 말한 것이 아니니 그 뒷감당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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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자를 일 없었으면 좋겠다.이현종 (전)여수시민협 공동대표, (전)여천고 교사 대통령 후보 토론 방송의 시청율이 30%를 훌쩍 넘었다. 국가를 맡길 대통령의 능력을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과거에 잘못된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을 어지럽혔는지 눈으로 생생히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토론회를 직접 보면 후보들의 능력을 잘 판단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의문이다. 그들의 말 중에는 거짓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건 국민들의 의심증세 때문이 아니라 후보들이 만들어 놓은 불신 때문이다. 당장 마지막 토론에서 자신을 선택해주라고 강변하던 후보가 다음날 다른 당과 합당을 위해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조변석개다. 안철수 후보 말이다. 그의 말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데 어찌 내일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는 자기 입으로 ‘윤석열 찍으면 1년 뒤 손가락 자르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기도 했다. 그리고 절대 후보 사퇴는 없다고 몇 번을 강조했다. 그런데 그런 후보가 윤석열을 당선시키기 위해 사퇴를 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상습적 거짓말쟁이일까? 아니면 그 말을 믿었던 내가 바보일까? 완전 조롱당한 느낌이다. 정치인들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그들의 말 중에는 사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사실을 말하는지,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임기가 끝나봐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판단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의 선택이 나의 삶을 바꾸고, 나라의 운명을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를 보아야 한다.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자신이 약속한 것을 잘 실천했는지, 자기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지는 않았는지, 자기가 한 말을 마음대로 바꾼 일은 없는지 그런 것들을 살펴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도 그는 후보사퇴를 몇 번 했다. 그래서 이름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비아냥거림도 들어야 했다. 그런데 걱정이다. 만일 윤석열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국민들의 손가락은 놔두더라도, 자신의 손가락부터 잘라야 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만일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그가 손가락 자를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그의 거짓말은 하나가 추가된다. 그런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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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은 자유를 모를까이현종 (전)여수시민협 공동대표 2004년이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20~30대 젊은이들의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발언을 하는 중에 '60~70대는 투표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하였다. 그는 그 한 마디로 노인을 비하하였다는 공격을 야당과 언론으로부터 끊임없이 받아야 했다. 결국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훅 날아갔다. 상대 세력이 이명박, 이회창으로 나눠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명박과의 득표율 격차는 20%를 넘었다. 패배한 이유가 그것 한 가지만은 아니었겠지만 상대에게 공격의 빌미를 준 것은 사실이고, 그 영향도 지대하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는 그보다 더 심한 말이 나왔다. 유력한 야당 후보가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은 자유도 모른다.’라고 했다. 그런데 하루이틀 떠들다 쑥 들어갔다.(후보뿐 아니라 젊은 야당 대표의 입에서도 이대남을 챙기려는 의도로 세대갈등, 양성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이 새나오기도 했다. 정동영의 노인비하 발언에 비하면 그 정도가 심각하다. 가난하고 못배운 것도 서러운데 인격까지 무시당했으니 말이다. 아마 국민 절반은 그에 해당할 것이니 그들은 분노하고 따져야 마땅하다. 부자로 살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덕을 갖추었다면 그런 차별 발언에 같이 분노하고 따져야 한다. 그런데 조용하다. 이상하다. 여당의 공격력이 부족한 것인지, 언론이 바보가 된 것인지? 하기야 개인적으로 떠들어대도 언론이 보도해주지 않으면 소용 없다. 언론의 힘은 참 세다. 이를 어찌하랴. 다수의 언론이 쓰레기(기레기) 취급을 당할 정도로 적폐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들이 정의로운 보도를 해줄 리가 없다. 다수의 종편들은 노골적으로 쓰레기같은 보도를 흥미진진하게 되풀이한다. 이명박의 최대 업적은 그런 종편을 만들어 놓은 것일 게다. 선진국에서는 종이신문사가 TV채널을 동시에 갖지 못하도록 통제되고, 어떤 언론사든 개인의 지분 소유를 제한하고 있다. 그런 반면 우리 나라의 최대 언론사로 간주되는 조선일보는 친일파 방응모의 후손인 방씨일가가 대부분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다음가는 중앙일보는 삼성가의 외척인 홍석현이 최대주주이고, 여타 신문사도 친일파의 후손이나 특정 종교 혹은 재벌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런 언론들이 가난하고 못배운 사람들의 편에서 보도할 리가 없다. 국민주 신문인 한겨레와 사원주주제 신문인 경향신문의 기사를 다른 언론의 기사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삼척동자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이 국민 의식에 미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어떤 사람이든 토론을 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신문을 보는지, 어떤 방송사의 뉴스를 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언론이 그 사람의 인격까지 결정해가기 때문이다. 그 인격들이 모여 국격이 된다. 독일 유명 시사지인 슈피겔지는 “아시아 유일의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수준의 경쟁력과 기술력을 가지고도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것은 “언론의 부패”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본질로 가자. 이번 대선에서도 언론의 영향력은 클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은 선별, 확대, 축소 보도를 통해 진실을 왜곡하고 조작한다. 그래서 우리가 언론이 되어야 한다. 그게 정의롭게 사는 길이다. 옳은 것은 옳다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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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성적은 그 사람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차별을 당연시여기는 능력주의, 그 중심에 학벌이 있다. 시험을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인식(불평등은 참아도 과정의 불공정은 못 참는다) 공평한 요컨대 능력주의대로 되면 공평하다고 여기는 것은 그런데 우리의 젊은이들은 능력주의의 원칙만 적용되면 공평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스펙을 쌓아 능력을 키우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뛰고 있다. 그러나 그 줄세워진 석차가 인생의 등급을 인정해주는 결정이나 되어버린 것처럼 낙인이 된 것이다. 개인주의 능력주의 그래서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힘없고 가난한 사람은 비참한 삶을 살아야 시대 그게 능력주의 배제와 무시 20대 남성의 정치성향이 60대의 정치성향과 유사 20대의 정치 성향은 ‘정치적 무관심’에 가깝다. 이는 다양한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가장 큰 것은, 경제 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점이다. 정치는 스스로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정치 참여 그 자체에는 여러 모로 비용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버는 정치인을 불로소득 생활자의 일종으로 인식하였고, 이러한 맥락에서 정치 참여 증진을 위해 기본소득을 제공해야 한다는 논의를 제시하는 학자들도 있다. 20대는 역사상 유래없는 고스펙을 가지고서도 역사상 유래없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세대다. 알바를 여러개씩 뛰고 하루에 삼각깁밥 하나로 버티면서 스펙을 준비하더라도 취업을 장담할 수 없는 세대다. 수업 빼먹고 당구장과 소개팅으로 놀러다녀도 취직자리가 보장되던 이젠 세대의 생활과는 근본적인 환경 자체가 다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거나 제대로 학습할 수 있는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다. 자연히 정치에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 20대 정치적 무관심의 두 번째 이유는, 이와 같은 생활 환경 속에서 발생하는 20대의 정치사회적 요구를 현재의 정치체제가 제대로 반영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쟁과 권력 유지에만 몰두하는 기성 정당과 그 지지자들의 세태가 자신들의 선호와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지정당 없음’을 선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대와 청년층의 정치적 성향은 기존의 좌‧우 구분, 보수와 진보의 구분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의견을 좀 더 반영해줄 정당과 대표’를 찾고 있으며, 이러한 역할에 못 미친다고 보는 정당들을 과거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심판하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라며 어물쩍 묻어버리려는 태도가 청년층에게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것이다. 2016년에는 그 타겟이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정권이었다면, 2021년에는 민주당을 비롯한 진보정권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지금 한국정치에 필요한 고민은 ‘청년들이 정치 의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뻔뻔한 푸념이 아니라 ‘왜 청년들이 기성정당으로부터 돌아서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층의 정치적 무관심은 불만에서 비롯되는 적극적 반대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이 점차 장기화되다 보면 나중에는 진짜 실망과 불신, 포기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20대 청년층이 왜 저런 독특한 정치 성향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한국정치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까? 적어도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청년층을 쉽사리 폄하하는 ‘정치 꼰대 세대’들이 남아 있는 한은 불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