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사막엔 꽃이 있을까? 궁금했다. 사막은 모래의 땅이다. 꽃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사막 바로 곁에, 물이 흐르고 초원이 푸르고 말이 걸어다니고, 꽃이 끝없이 피어있었다. 한국에서 본 각시붓꽃처럼 푸르른 빛의 보랏빛 꽃이 사막처럼 길게 끝없이 길게, 꼭 사막을 감싸주려는 듯 피어 황혼의 그림자를 길게 끌며 여유롭게 풀을 뜯는 말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건 놀라고자 갔던 고비의 한 풍경이었다.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처음 간 곳 같지 않게, 가슴 한켠을 후비고 솟아나온 오랜 벗의 노래 소리 같은 은은한 저녁 한 때의 시간에 대한 ...
붉고 노랗고 핑크빛이며 심지어는 파란색까지, 장미야말로 참으로 사랑받는 꽃이며 화려함의 대명사다. 사랑과 행복을 선물하고자 하는 연인들의 꽃바구니를 채우며 장미를 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새빨간, 가장 뜨거운, 가장 열정적인 말 한가운데에 ‘장미’를 놓아도 손색은 없으리라. 그 환한 꽃의 뒷면엔 또한 짙은 그림자가 있다. 장미는 그림자이다. 행복을 그리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가슴처럼, 어딘가로 사라져버릴 것처럼 두려운 삶의 그림자, 행복. 그대는 지금 행복한가? 그대는 고독한가? 어느 시점, 자신의 깊은 ...
바라보는 것, 혼자 또 함께걷는 것, 구불구불 그렇게 느리게사는 것, 어둑어둑 또 빛나게사막이라도동굴이라도차마고도(茶馬古道)의 소금길이라도 그대만의 길이 슬프냐? 한 뼘만큼의 허공을 소유하고 딱 반 쪼가리의 도자기를 굽기 위해 삼천 도 불가마에 온생을 거는 마침내 닿은 천 길 낭떠러지 한 발자국 더 와락 솟아 날아갈 날개가 있다구? 여기, 그 하나의 길! 백 개의 길이 화려하다한들 천 개의 길로 바벨탑을 쌓았다한들 그대의 뻘밭길, 그 오지의 하루보다 더 좋으랴? 길은 길일 뿐 적막허랑낭창 걸어가...
논어 위령공 23장의 말로 이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 勿施於人) : 누구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도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마음으로부터의 겸양과 정성을 다하고(忠 충), 자신이 원치 않은 일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도 원하지 않아야 한다(恕 서)는 공자의 평생 좌우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은 아마 미투(Me Too)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의 사회국가적 차원에서 연루된 그릇된 의식과 그릇된 행동이 결집된 그릇된 문화...
‘어머니’는 어떤 존재일까. 나를 낳아주고 나를 바라봐주며 나의 몽상을 채워주고, 삶의 모든 역설과 동경과 살과 피를 물려주고 사라져버린 존재, 골드문트에게 ‘어머니’는 그야말로 우주로부터 출현한 모든 생명들의 근원이며 인간 삶의 비참을 완성시키는 한 빛의 세계이다. 그 빛은 태양빛처럼 시시때때로 내 몸을 따스함으로 감싸주었으나, 한없는 그리움으로 멀어진다. “그를 향기롭게 감싸면서 불가사의한 눈길로 그를 지켜보고 있으며, 마치 넓은 바다나 낙원처럼 저 깊은 곳에서 속삭이고” 있는. “어머니는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모든 것을 갖고...
시는 삶의 지독한 모순과 아픔을 위하여 존재해왔는지도 모른다. 언제나 아프고 언제나 부조리한 건 아니지만 그와 반대로 합리이며 이성적이고 아름다우며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시의 길을 찾아 하얗게 밤을 샐 일은 없을 것이다. 시시때때로 찾아드는 삶의 어떤 비참이, 절망이, 아픔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그 물음에 답해야 했을 때, 시는 물음의 다리를 건너는 도구가 되어주었다. 얼마 전에 몽골의 고비에 갔었다. 오래 전부터 ‘사막’이란 언어가 주는 끌림 때문에 소박한 맘으로 언젠가는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
세상은 저급함 투성이다. 그 저급함 속에 위대함은 빛나고 있다. 모든 가치는 전도된 가치에 의해 평가될 수밖에 없는데, 그 역설을 비켜갈 문장 또한 없다. 헤겔의 정반합이 아니더라도 삶의 이치를 보여줄 논리를, 짧고 단순한 명제로써 그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철학자 또한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문학은 철학적 삶에 대한 정의正意를 비추기 위하여 디테일한 은유와 상징을 답보해야 한다. 작가의 펜은 그때마다 평범과 비범 사이를 고독하게 오가며 등장인물들을 탄생시키고, 그들에게 역설적 생명을 부여하기 위한 문체 창조에 고...
1446년 10월 8일, 한글이 태어났다. 한글 탄생에 얽힌 사상적 과학적 미학적 배경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기로 한다. 오늘날 세계는 한 우물에서 길어오는 물을 먹는 경우처럼 한 마을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넓어야 며칠이면 오고갈 뿐만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단 몇 시간도 걸리지 않고 모든 상황을 전달 받을 만큼 가깝고도 먼 그런 삶의 형태가 가능하다. 그렇다고 해도 세계의 언어들은 삼삼오오 자신들의 영역을 차지하고 살아간다. 그 언어들의 영역이 바로 민족이나 국가나 지역을 이룬다. 그 안에서 서로를 이해...
인문학이란 생선 냄새다. 아침에 한 마리의 생선을 구웠더니 온 집안에 냄새가 가득 찬다. 처음엔 비릿하다가 조금 있으면 고소하다. 더 오래 되면 창을 열고 냄새를 밖으로 내 보낸다. 다른 집 창을 통해 그 냄새는 다른 사람 입맛을 돋우고 생선 가게로 그 집 주부의 발길을 재촉할 것이다. 가을이다. 전어 굽는 냄새 그리워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계절, 오늘은 전어회에 전어구이에 저녁을 고소하게 먹어보고 싶다. 책 읽으면서는 어떤 한 냄새를 맡아볼까? 예전에 읽었던 [세계사편력]이 생각난다. 『세계사편력(Glimpse...
삶의 한가운데에 선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자신의 가치를 세울 수 있을까. 누구는 행복한 삶을, 누구는 사랑하는 삶을, 누구는 건강한 삶을, 누구는 부자 되는 삶을.....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왔을까. 참 지고지순한 물음이다. 적어도 ‘삶의 본질’에 다가서면 우리에게 겉껍데기 아닌 반짝이는 알맹이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고요히 나부끼는 깃발을 내려놓아야 한다. 깃발처럼 나부끼며 우리를 설득하려 했던 삶의 보편적 가치들이 왜 더 이상의 희망이 되지 못 하는 것인가. 왜 우리의 가슴을 이렇게 허전하...
인문학이란 후유증이다. 고통과 환희, 열정과 쓸쓸함, 상처와 희망을 동시에 선물하는 통렬함이 인문학이다. 그 후유증 때문에 인문학은 영원히 우리들의 심리 속에서 심각하거나 경이로운 미래에의 전망을 저울질하게 만든다. 병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 어떤 과정의 치유가 끝났다고 해도 그것으로 아팠던 시간들의 상처를 깨끗이 털어버리지 못 한다. 보이는 외상은 더 이상 깨끗해질 수 없이 나았다고 해도 내면 구석구석에 깃들어버린 심리적 아픔과 내상마저 온전한 회복을 보여주기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그 후유증을 닮은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이란 기우제이다.대지가 메말라 지구의 생명들이 목이 타고 마실 물이 없으면 그 어떤 삶도 피폐해진다.죽음의 푸가처럼 처절한 신음들로 세상은 가득찰 것이다. 밭에도 논에도 씨앗을 들일 수 없다.하늘은 높아가지만 너무 높아 손닿을 수 없고,아무리 위대한 하늘의 말씀이라도 땅을 적시지 못 하면 그 어떤 사랑도 불가능하다. 하늘은 땅과 만나야 비로소 한 씨앗을 뿌려 생명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세상이라는 역사는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인간의 시간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하늘이 구름으로 젖어들었다.방울방울 물방울들이 밤새...
인문학이란 게딱지다. 온뻘밭을 옆걸음으로 걸어오며 만들어진 견고한 등껍질이다. 그 껍질 속에 숨은 오묘한 언어들의 꽃잎을 스치는 바람결이 인문학의 문장들이다. 그러니까 인문학은 게딱지의 미학이다. 만만치 않은 비린내를 손가락에 범벅하며 먹어야 할 시간의 끈적임이다. 게딱지의 시간이 뭉쳤다 풀어지는 그 아침 점심 저녁 밥상에는 인문학의 바다가 질펀하다. 게딱지는 그러므로 바다의 펜촉이다. 그 바닷물 잉크가 마르지 않는 한 어떤 삶의 결이든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모래밭 책상이 펼쳐져있다. 소금물 잉크가 필요할 때는 언제...
인문학이란 합리에 이르는 길이다. 최초의 인간은 아마 자연적 인간이었을 것이다. 먹고 자고 놀고 싸고, 씹하고.... 자연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해가던 인간은 그 자연을 이탈하고 자연의 길 아닌 인간만이 소유한 두뇌적 삶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 길 안에서 무수한 오류와 합리 사이를 오가며 무엇이 가장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가를 고뇌했을 것이다. 오류란 다름아닌 이기적인 인간의 욕망에 의해 저질러지는 수없는 파괴와 전쟁, 살육과 도적질의 연속된 고통의 억압기제였을 테니까. 합리란 ...
인문학은 춤이다. 춤은 시간과 공간의 찰떡 만남이다. 그 순간, 만남의 교집합이 춤이다. 춤의 시간은 완전한 현재태요, 춤의 공간은 빈틈없는 현실의 경험태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춤을 춘다고 하자. 그 춤의 시연을 위해서 그들은 정교한 프로그램은 아니더라도 서로의 눈빛과 감정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정교한 언어적 이벤트를 통하여 한 동작 한 동작을 치밀하게 구성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몸과 몸의 각도를 통하여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과 몸짓을 위하여 어떤 마음의 색채로 흘러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