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순간의 선택이 도시 번영을 좌우한다.
일제 때 조정에서 경부선 철도를 서울->청주->공주->부산으로 건설하려고 했으나, 청주·공주 유림들이 양반 사는 동네에 웬 쇳소리냐며 극력반대 해서, 결국 철도는 서울->대전->부산으로 건설했다.
대전은 교통의 중심도시가 되었고, 공주는 1931년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다. 대전은 현재 147만 여명이고, 공주는 10만 여명 유지하기도 힘들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세우기 전에 대학부터 세웠다. 이스라엘 최고의 명문인 히브리대를 건국 30년 전인 1918년 설립했다.
오늘날 이 대학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최첨단기술 창업의 메카가 됐다.
통합 전 여수대학교 한 학년 학생 정원이 1219명 이었으나, 현재는 702명이다. 여수인구도 수천 명이 줄었다.
여수대 통합 때 왜 공대나 의과대학을 여수로 유치하지 못했는지 묻고 싶다. 그랬으면 지금 쯤 특성화 대학으로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 왔을 것이다.
한영대 석유공학과를 보라.
공대(석유화학·철강 산업의 중심지역)와 대학본부가 반드시 여수로 와야 한다. 전남대학이면 대학본부가 전남에 있어야지 왜 광주에 있나?
통합청사 건립(시청 별관)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1998. 4. 1. 3여통합(여수시:188,000 여명 /여천시:80,000 여명/여천군:61,000 여명) 후 22년이 지난 지금도 시청 청사가 본청을 포함해서 여서, 문수, 진남·망마 경기장 등 8개나 있다.
시민들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비효율성 등으로 시민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3여 통합 합의사항 6개항 중 첫 번째가 통합청사 문제다.
(삼려통합에 따른 이행사항 실천 협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