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5 (수)
올해 들어 구례장터에서는 종종 신나는 일이 벌어졌다. 설을 앞두고 지리산 엄마들이 ‘지리산 아이들 사진전’을 열었다.
장터에 나오신 할머니, 할아버지, 아저씨, 아주머니, 이모, 삼촌, 아이들, 명절에 고향을 찾아 음식 장만하러 나오신 분들... 많은 이들이 이쁜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꽃보다 예쁜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대보름날에는 엄마, 아빠, 아이들이 어울려 풍물을 치며 장터를 한 바퀴 돌았다. 지신밟기도 하고 액맥이 타령도 부르면서 액은 저~~리 물러가고, 좋은 일들 가득하시라고 복을 빌어드렸다.
아이들도 졸랑졸랑 따라다니며 상쇠의 넉살스런 입담에 웃고, 서로 복을 빌고 복을 받는 그 정겨운 풍경에 즐거워했다.
그러다가 어른들이 치는 악기를 저도 쳐보고 싶은지 달라 해서 장구, 북, 소고 등을 치며 대보름날의 분위기를 누렸다.
마치 어린 날, 대보름 저녁에 동네 어르신들이 풍물을 치며 각 집마다 돌면서 지신밟기를 할 때 신이 나서 따라다니던 내 모습 같았다. 그러면서 나도 크면 풍물을 배우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성의 날에는 여러 엄마들이 모여 주먹밥을 만들고 떡을 해서 장터에 오신 엄니들께 나누어 드렸다. 밥과 떡을 받으신 어떤 엄니가 하시는 말씀.
“아따~~ 이 날 이때껏 살아왔어도 여자라고 좋은 일 하나 없더니마는 여성의 날이라고 이런 것도 받아보고... 호강하네. 호강혀. 고맙소!”
물론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좋은 일이야 있으셨겠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여자로 태어난 것으로 존중받고 축복받아 보기는 처음이라는 말씀인 듯 했다.
그 말씀이 웬지 모르게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나 또한 집안 어른과 함께 자라 남자 앞에서 늘 고개숙이고, 자신을 죽이고(내 생각과 욕구 등을 표현하지 못하고), 밖에 나가서는 얌전하게만 지내야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가정 훈육의 힘은 생각보다 아주 강력해서 그 틀과 사고를 벗어나기가 쉽지가 않았다.
대보름날 행사를 치루고 나서, 엄마들 몇 명이 모여 작은 풍물 모임을 만들었다. 소싯적에 다들 풍물을 쳤던 사람들이라 2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연습하고, 함께 저녁을 먹기도 하고, 그러면서 아이들도 함께 모여 알콩달콩 재미나게 놀았다.
때론 모닥불 피워놓고 술 한잔도 하면서 마당에 환하게 피어난 살구꽃도 보고, 밤하늘의 별도 보면서 이야기 나누다가 노래도 부르다가 북소리에 맞추어 쑥스러운 소리 한 자락도 해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버이날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풍물 멤버 중의 한 명이 장터에 나갔다가 이번에는 엄니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셨단다.
“이제 쫌 있으믄 어버이날인디, 또 뭐 하겄네잉?”
올해 들어 장터에서 몇 번 재미난 신명판이 벌어지니 장터 어머니들도 은근 기대가 되시나 보았다.
판이 벌어지면 재미나게 보시고, 즐기시고, 이제는 또 뭔 일이 벌어지려나 기대하시고 먼저 말을 건네는 모습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우리 젊은 엄마들이 가만히 있으면 안되겄제! 다들 의기투합하여 어떻게 할 것인가 머리를 맞대었다.
우선 풍물로 장터를 한바퀴 돌고, 어버이날잉께 떡도 돌리고, 사탕도 돌릴까? 우리가 돈은 별로 없응께 여성농민회에 떡을 부탁허고, 남성 농민회에는 후원금을 부탁허까? 그라고, ‘엄니,아부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하고 써서 아이들에게 만장도 들고 다니게 하까? ‘산책(산보고 책보고) 작은 도서관’에 도와주실 엄마들 있는지 말씀드려 보까?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어 여성 농민회에서는 쑥이 한철이라고 쑥을 캐서 절편을 만들어 주시고, (남성 농민회)에서 받은 후원금으로는 사탕이랑 여러 작은 간식거리를 사서 아이들과 자원봉사 엄마들이 장에 오신 엄니, 아부지들께 나누어 드렸다.
우리 풍물 엄마들은 색지로 꽃도 이쁘게 접어 빨강, 파랑, 노랑, 분홍, 하양 등 머리에 곱게 달고 장터를 한바퀴 돌며 그동안 우리 자식들 키워주시느라 애쓰신 부모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험난한 역사의 질곡을 살아오시면서도 자식들 위해 평생을 애쓰고 헌신하신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이렇게 세 끼 밥 걱정 안하고, 또 온갖 좋은 것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엄니, 아부지들이 그 역경 속에서도 지금의 좋은 시대를 일궈오신 것처럼 우리들 또한 더 나은 세상, 함께 보듬고 살아가는 좋은 세상이 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