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4 (화)
입추와 말복이 지난 지 여러 날, 구례에도 코로나 환자가 생기기 시작해서 지역민들이나 학교에서도 무척 긴장하는 상태였다.
당분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가정학습을 하기로 했다. 집에만 있다 보면 삼둥이들이 심심하고 게임, 스마트폰을 하겠다며 실랑이질만 할 것 같아서 매일 산책을 하기로 했다.
먼저 가까운 화엄사 숲길을 천천히 걸어보고, 천은사 뒤안길과 새로 만들어진 푸르른 저수지 길도 걸었다.
아이들 아빠가 쉬는 날이면 함께 걷기도 했다. 화엄사와 천은사 계곡 길을 걸을 땐 아이들이 계곡물에 뛰어들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신나게 놀았다.
첨벙첨벙 물에 뛰어들고, 또 뛰어들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기나긴 장마 끝에 내리쬐는 햇빛은 말복이 지났는데도 그동안 못다 내린 햇살을 퍼붓듯 따갑게 느껴지고, 더위에 열 받은 물은 차갑게 느껴지질 않았다. 그리고, 구름이 산 아래 낮게 깔린 날에는 오산 사성암에도 올라가 널따란 구례 들판과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을 바라보고 왔다.
그런데, 세 아이를 데리고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피아골!
둘째는 올해 연달래 필 무렵에 고모 가족들과 피아골을 다녀왔는데, 큰아이와 막내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피아골은 우리 집에서도 꽤 먼 느낌이 있어 일 년에 한두 번밖에 가보지 못하고,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데리고 대피소까지 다녀오는 일은 엄두 내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키도 작고 몸집도 작은 막내가 작년까지는 걷는 걸 힘들어하고, 조금 걷다가도 업어달라고 했다. 그런데, 올해는 내가 가끔 산책하거나 할 때 데려가면 제법 잘 걸었다.
올 초에 아이 아빠가 노고단에 갈 일이 있었는데, 막내가 따라가겠다고 떼를 써서 업어달라거나, 떼쓰거나, 못 가겠다고 주저앉으면 안 된다는 약속을 굳게 하고 산에 올랐는데, 웬 걸! 좀 천천히 올라가긴 했지만 군말 없이 잘 올라갔다고 한다.
그리고, 작년에 막둥이랑 한 약속이 있었다. 작년 겨울, 눈이 하얗게 덮인 지리산 바래봉을 여러 가족과 올랐는데, 아이들도 같이 갔었다.
그런데, 우리 막둥이는 걷는 것도 힘들어하고, 체력도 딸려서 도저히 데려갈 수가 없었는데, 아이는 그게 무척이나 서운했나 보다.
그래서, 밥 잘 먹고 튼튼해지고, 엄마가 산책갈 때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많이 걷다 보면 내년엔 겨울 산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약속을 했다.
세 아이를 데리고, 피아골로 출발하기 전에도 고민을 많이 했다. 요새 계속 걷기만 하고, 다른 재미있는 장소는 안 간다고 세 녀석의 불만이 쌓여 있는데, 꽤 먼 거리인 피아골 대피소까지 간다면 안 갈 게 뻔했다.
그래서, 거기 가서 김밥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자고 꼬드기니 세 녀석이 앗싸~~하며 모두 넘어온다. 주섬주섬 도시락을 챙기고, 굽이굽이 기나긴 피아골 도로를 올라 산 입구에 차를 받쳐놓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멀미 때문인지 산행 초입부터 아이들이 걷는 걸 마뜩잖아한다. 얼마 전까지도 비가 계속 내려 계곡은 물이 불어나 장쾌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아이들은 시큰둥하다. 피아골 계곡은 무척 깊숙하고 깊다. 그래서 구석구석 멋진 계곡의 경치를 보는 맛이 참 좋다. 땅에서 꽤 깊숙이 꺼져 아래로 흐르고 있어 아찔하기도 하고, 장엄한 느낌도 든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땅만 보고 걷는다.
한참을 걷다가 길에서 계곡이 가까운 곳에 이르자, 애들은 또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수영하고 싶다고 한다.
처진 기분을 달래줄 겸, 계곡물이 얕은 곳에서 잠시만 놀다 가자고 해서 아이들은 한바탕 신이 나게 놀았다.
물놀이를 마치고 나서는 기분도 상쾌해졌는지 잘도 걷는다. 막내도 생각보다 훨씬 잘 걸었다. 그래도 왕복 4~5시간 정도를 걸으면 아이들이 항의를 할 것 같아서 중간쯤 걷다가 점심을 먹고 내려가자고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아이들이 대피소까지 가서 밥을 먹자고 하여 내가 막둥이 챙겨 가느라 체력이 바닥날 지경이 되었다.
어찌 됐든 드디어 대피소에 도착했는데, 예년 같으면 등산객들로 한창 붐빌 시기인데, 사람 한 명 보이지 않고, 코로나로 인해 관리인들도 보이질 않는다.
다람쥐 몇 마리가 쪼르르 달려와 우리 옆을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 네 사람은 밥을 맛있게 먹고 그곳의 기운과 풍광에 젖어 있다가 하산을 하였다.
하산을 하는 세 아들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너무도 든든하고 고맙게 느껴졌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 저렇게 자라 이 엄마랑 피아골 산행을 같이할 정도가 되었나 세월이 참 빠르게도 느껴졌다.
마을 입구, 가게에 내려왔을 때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어디까지 갔다 오느냐고 물으신다. 대피소까지 갔다 왔다고 했더니 아까 내려오다가 우리를 봤다고 하시며 아이들을 불러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다 하셨다. 그러면서, 이렇게 아이들이 산행하는 게 너무 보기 좋으시다며 칭찬을 해 주셨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도 선물 받고, 칭찬도 듬뿍 받아서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로 인해 부모가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면역력을 키워주는 일인 것 같다. 집단방역도 참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는 자연 속에서 신나게 놀고, 걸으면서 자연의 충만한 기운을 받는 것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함께 자연 속에서 많이 걷고, 많이 누려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