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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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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정의 주말엽서

여행이 준 선물

여행이 준 선물

김상훈.jpg

김상훈 수필가 

 

 

 

 

신묘년설날 모처럼 집에 온 아들에게 덕담 몇 마디를 하고 난 다음 금연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망설임 끝에 어렵게 내 의견을 제시했는데 녀석은 별다른 기색 없이 희미한 미소만 지으면서 예! ! 하면서 대답하는 품새가 영 믿겨 지지 않았습니다.

 

 

끊을 의지는 확고한데 그게 잘 진행되지 않는다든가 실행을 해 보지만 항상 성공하지 못했다는 그런 기본적인 대답도 아닌 그저 건성으로 내 물음에 성의 없는 반응만 하고 있어서 녀석이 딱히 끊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라고 짐작하면서 성묫길에 나섰습니다.

 

 

왕복 3시간쯤 소요되는 부모님의 산소를 다녀오는 동안 내내 우리 부자는 별로 말이 없었습니다.

 

 

녀석이 운전을 좀 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옆자리에 앉더니 이내 잠이 들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지나서는 옅든 코까지 골면서 태평스럽게 잠든 모습에 짜증이 슬며시 밀려왔지만 때가 때인지라 번잡해진 도로 사정을 감안(勘案)하면 내가 직접 운전하는 게 낫겠구나 하고 에둘러 생각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만일 지금의 아들 나이쯤에 아버지를 모시고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가면서 아버지께서 장시간 운전을 하고 내가 옆자리에서 태평스레 잠을 자고 있다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그런 가정만으로도 아버지께 불효를 드린 것 같아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내 탓이지 하는 자괴감도 들었고 참 세상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불현듯 스침과 동시에 너는 어쩔 수 없는 MZ세대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 그렇더라도 이렇게까지? 하는 서운하고, 조바심 나고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편린(片鱗)들이 머릿속으로 비집고 올라오는 혼란스러움에 한동안은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성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부자간의 좌석은 변함없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대화 한마디도 없이 되돌아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몰입된 후부터는 너무 서운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소용돌이치면서 안정감마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우드랜드에 들려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해 보면 혹시 뭔가의 소득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긴박한 생각이 들어서 차량을 급히 억불산 쪽으로 돌렸습니다.

 

 

여기가 어디예요?”

 

 

잠에서 부스스 눈을 뜬 녀석은 알 수 없는 눈앞의 풍경에 뜨악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응 정남진 편백 숲 우드랜드라는 곳이야 아주 좋은 명승지란다 특히 너 같은 잠퉁이 녀석에겐 더없이 좋을 수도 있는 곳이거든 내려서 좀 쉬었다 가자

 

 

~~~!”

 

 

모든 나무 중에서 피톤치드를 가장 많이 함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편백 나무가 빼곡히 차 있는 숲길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톱밥을 깔아놓은 산책로에 들어선 순간부터 편백 특유의 그윽한 향취가 온몸에 휘감기는 공기의 청아함과 함께 코끝으로 확 끼쳐왔습니다.

 

 

10 여분쯤 걸어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데크길로 접어들었을 때 아이는 심호흡도 하고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보였고 나 또한 가슴의 답답함이 조금쯤 풀리는 듯한 청량함이 온몸으로 느껴져 왔습니다. 숲의 오묘(奧妙)한 힘과 자연의 무궁(無窮)한 능력에 동화되어 굳어있던 내 마음이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처럼 고요하게 퍼지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것은 편백 나무 특유의 향취 때문일 수도, 아니면 부모님 산소를 오랜만에 다녀온 불효자만이 느끼는 작은 뿌듯함에 연유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우리 부자는 어느새 손을 잡고 걷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손은 땀이 약간 배어 있어서 부드럽고 다사로운 느낌이었는데 그것 또한 편백의 향기가 우리 부자의 손과 손 사이로 슬며시 녹아들어 체온을 따듯이 올리고 있는 듯한 상쾌함이 묻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나처럼 이런 기분일까) 녀석의 어두웠던 표정이 서서히 걷히고 잔잔한 미소가 얼핏 보일 때 관리실에서 전하는 말이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습니다.

 

 

이곳 전체는 금연 구역이니까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극히 일상적인 내용의 안내 말이었는데 잠자코 듣고 있던 녀석이 키득키득 큰소리로 웃더니 빠르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 안내방송이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고 있네요, 여기는 흡연지역이니까 산불 예방과 여러분의 건강을 위하여 금연을 삼가 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는데요 하하하, 금연을 삼가라, 너무 재미있는 말 아닙니까. 흡연과 금연, 금연과 흡연의 조합이라니!”

 

 

나는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바로 상황이 정리되었습니다. 그가 기분 좋았을 때 했던 특유의 익살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당연히 나도 평소 내 방식대로의 맞장구를 칠 수밖에요.

 

 

뭐 이 녀석아! 네놈 코가 호강한 대신 귀에는 감기가 온 모양이구나, 금연을 삼가라고? 그게 말이 돼? 흡연을 삼가라는 말이겠지!”

 

 

아닙니다, 분명히 금연을 삼가라고 했습니다. 하하하

 

 

뚱딴지같은 궤변은 제 놈이 늘어놓고선 하하하하

아니라니까요. 저 안내방송이 이빨에서 땀 냄새 나는 말을 하고 있다니까요.

 

 

안내방송도 1년에 한 번씩 실수하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인 모양입니다. 그것도 정월 초하룻날부터 했으니 1년의 액땜을 지금 하는 셈이라니까요, 하하하하!“

 

 

나는 아이의 녹슬지 않는 상상력과 순간의 재치와 빠른 변화의 대처에 녀석이 아직도 여전한 익살꾼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아이에게서 받았던 서운한 마음의 빗장이 슬며시 풀리고 있음을 흐뭇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이는 순수했던 옛날의 그 눈빛으로 돌아왔고 나의 흐뭇해진 느낌과 아이의 본래대로의 돌아옴은 우리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곧장 홍소(哄笑)로 이어졌습니다.

 

 

주변에 관광객들이 더러 있었지만 우린 웃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중지할 수가 없었지요,

 

 

우리의 호쾌(豪快)한 웃음소리는 바람과 함께 푸르고 푸르른 창공으로 나래를 펴면서 이름 모를 새와 함께 하늘로, 하늘로 높이 높이 솟아 올라갔습니다.

 

 

집을 나설 때 침울하게 시작했던 성묫길이 유쾌함으로 순식간에 바뀐 것입니다.

 

 

(그래 바로 이것이 진정한 여행이 준 선물이 아니겠는가. 역시 우드랜드는 탁월한 선택이었고 웃음은 만병통치약이 확실해!)

 

 

나는 점점 만족한 표정으로 변해갔고 한바탕 웃음으로 기분이 좋아진 녀석은 달뜬 음성으로 말을 이어 갔습니다.

 

 

아버지 이제부턴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사실은 어젯밤 온전히 잠을 못 잤습니다. 모처럼 아버지를 뵙고 수척해지신 모습이 아른거려 이것저것 생각하느라고요 그러나 우드랜드의 맑은 공기를 마시니까 정신이 명료해졌습니다.

 

 

그래서 선물 하나 드리겠습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정월 초하룻날인 오늘부터 정말 금연하겠습니다,

 

 

아까 할아버지 산소에서 아버지의 희망 사항인 금연하기를 저 자신과 명예를 걸고 다짐했습니다.“

 

 

나는 녀석의 뜻밖의 고백에 콧날이 급격히 시큰해졌습니다, (, ? 이건 편백 나무의 진한 피톤치드 때문만은 아닌데 말이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찡해진 내 콧속으로 편백 나무의 한없이 기분 좋은 향취가 흠씬 밀려왔고 녀석의 손은 한층 더 다사로운 온기를 나에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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