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이민숙 샘뿔 인문학 연구소 소장
비(悲), 함께 아픔을
꽃이 아름다운 것은
피면서 지기 때문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
삶의 매 순간이 절실하고 아릿한 것은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이 함께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모든 목숨붙이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자,
살아남고자 하느니
불타고 무너지는 세상
죽임당하는 뭇 생명의 애절한 눈빛 앞에서
지금은 우리 저마다의 아픔으로 서로를 품어 안아야 할 때
우리 모두 한목숨으로 이어져 있으니
그렇게 함께 죽어가고 있으니
사랑이란 죽어가는 내가
죽어가는 너를 혼신으로 품어 안는 것
지금은 함께 아파야 할 때
지극한 아픔 너머에서
새 생명 환하게 태어나는 것이니
--여류(如流) 이병철, 2024 새해 새아침에
태어나고 있습니다. 새해의 새날 속에서 복수초가 매화가 안개가 바람이 눈꽃이 그리고 상처를 뚫고 새살이... ...죽음과 탄생이 다르지 않고 고통과 환희가 따로가 아니라고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 하수구 속에서 쏙 고개를 내미는 시궁쥐의 눈빛과 우리의 안방을 드나드는 강아지의 눈빛과 참나무 둥치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노는 다람쥐의 눈빛이 다르지 않습니다.
사는 곳은 전혀 달라도 그들의 생명놀음은 하나!
그 나날의 애씀이 산을 푸르게 하고 나무를 간지럼 태우듯이 우리가 따스한 방안에서 마시는 따듯한 차 한 잔도 ‘나와 너’의 아픔 속에서 서로를 감싸 안음으로써 가능하다 할 것입니다.
미역국 한 사발을 앞에 놓고 살짝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가난한 어느 시인의 오늘 저녁답에 탄생의 희열과 죽음 가까이에서 살아남았다는 절실함, 아릿함의 시어들이 선물로 도착합니다. 새해 아침에 받아든 여류 이병철 선생님의 편지에 세상을 얻은 듯, 외로움이 싹 가십니다.
부실해진 위(胃)로는 먹을 게 없고
먹어도 에너지로 바꾸기 어려워진 나는
가을 지난 홍시가 주식이다
짜지도
맵지도
거칠지도 않은
이 부드러운 선물
핍팔라나무 아래서의 그 분도
아니라면, 누가 내게
이토록 하릴없이 입맞춤하고 있는가
목숨을 한바탕 가위질 당하고도
버팅기도 있는 힘은
두려워지던 세상에
다시 한 번 친해질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부드러움 덕분이다
너무 황홀하게 입술에 닿아
순간 사라져가면서 나의 육체가 되는
그것,
위용도 빛남도 거셈도 아니다
살고 싶게 만드는 건 진정,
--<홍시>전문/이민숙/『동그라미, 기어이 동그랗다』
‘홍시’는 우리 민족의 신화 속 과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곶감이 되는 감, 예지의 과일, 앞마당 뒷마당 탱글거리며 익어가는 민중의 나라, 유난히 친숙한 풍경이 이젠 도시의 외곽 시장 한 모퉁이에서 미소 짓습니다.
그렇지만 집집마다 홍시는 겨울밤의 적막을 달래주는 달콤함이지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했습니다.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이 음성이 들려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암흑의 순간이 진정한 변용의 메시지가 솟아나오는 순간이라는 거지요. 가장 칠흑 같은 암흑의 순간에 빛이 나온다는 겁니다.” 오래 전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홍시는 내 주식이었지요.
지금까지 이 시 덕택에 홍시 선물을 받습니다. 얼마 전에 내게 온 홍시들... ...내 몸을 살려준 그 사랑을 누구에게 되돌려줄까... ...제게 ‘홍시’는 그런 신화적 구원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런 새해가 시작되어 고맙습니다. 아프고 힘든 생명들의 지구, 이제 우리에게 내면에 감추어진 신화적 메시지를 받아 적는 의지의 하루하루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시의 시간들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도 달콤한 홍시처럼 자신만의 신화를 밝혀 적는 바알간 새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