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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사람들과 함께하는 인문학 산책

기사입력 2024.05.01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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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숙 (시인 샘뿔인문학 연구소 소장)

     

     

    [노인과 바다]와 생의 절정에 대하여; 사무엘 울만은 노래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시절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청춘이란 깊은 생의 신선함이라고. 희망! 희열! 용기!와 힘의 메시지를 갖는 한, 그대의 젊음은 오래도록 지속되리라고... ...청춘은 때때로 이십 세의 청년보다 칠십 세의 노인에게 아름답게 존재한다고.

     

     

    헤밍웨이는 그의 역작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의 지칠 줄 모르는 어떤 마음의 상태를 그렸다. 그가 노인인가 청춘인가는 그의 나이에 걸맞는 평가로서 주의를 끌 수 없다는 것, 바다로 나아가는 노인에게선 그 추레한 차림새의 겉모습을 보고는 짐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다.

     

     

    책을 읽는 독자에게 바다란 무엇인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바다! 그러나 바라만 보아서는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바다! 살아있음의 문제란 그런 게 아닐까? 소설 첫 머리에서 노인은 그의 친구인 소년에게 말한다.

     

     

    만일에 네가 내 친자식이라면 너를 데리고 어떤 모험이라도 해 볼 텐데... ....”

    노인과는 반대되는 성격의 아버지를 둔 소년에게는 이 노인의 어떤 면이 좋았을까. 그는 말한다.

    어부로는 할아버지가 최고라고. ‘나보다 더 나은 어부들도 많아라는 노인에게 소년은 버럭 소리 지른다. “쾌바(천만에)!” “고기 잘 잡는 어부는 많아요. 또 훌륭한 어부들도 있기는 하구요. 그러나 할아버지가 세계 제일이에요.”

     

     

    작가는 대체 어떤 스토리를 구상해놓았기에 이런 이야기로 소설을 시작하는 걸까. 눈밝은 독자의 헤밍웨이적 인생관이란, 바다의 깊은 곳을 숨쉬는 노인이 보여주는 청춘의 삶을 맛 본 후에라야 눈치 챌, 그런 인문학적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좋은 책은 그렇다! 읽고 음미하고 음미하면서 되새기는 시간이 필수적인. ‘노인과 바다는 단순하다 그러나 명쾌하진 않다. 논리적인 계산력으로 잡히지 않는 게 노인의 행위이고 소년의 긍지인데, 그 둘의 교집합이 빚어내는 사랑 속에 들지 않고는 희미하고 가련하기까지 하다.

     

     

    행운의 날이 바로 오늘이지. 매일 매일이 새로운 날인데 말이지. 운수가 좋다는 건 좋은 일이야. 그렇지만 그냥 앉아서 행운을 기다리는 것보다 낚싯줄을 제대로 드리워 놓는 게 내가 우선 할 일이지. 어느 순간 갑자기 행운이 다가올 때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두어야 그걸 놓치지 않을 테니까.’

     

     

    드디어 고기를 만난다! 하늘에는 어떤 낌새를 냄새 맡은 군함새가 날고 바다 속엔 해파리 떼가 부유하고, 그 곁으로 플랑크톤이 떼 지어 헤엄친다.

     

     

    첫 번째 수확물 다랑어를 잡아 고물 아래쪽에 처박는다. 노인이 점지해놓은 항해 85일째, 행운의 날! 낚싯줄을 잡고 있는 노인의 손에 느껴지는 촉감! 미세한 느낌으로도 알 수 있는 그 거대한 무게! 그러나 그놈은 자취도 없이 끝없이 노인을 끌고 나아간다. 입에는 낚싯바늘을 문 채.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누구도 가지 못하는 그곳까지 저 녀석을 따라가서 찾아내는 거야.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가지 못하는 그곳까지 말이지... ...’ 있는 줄(), 예비 사리를 모조리 하나로 연결한 다음 노인은 혼잣말로 말한다. “고기야.” 큰 소리로 부른다. “내가 죽을 때까지 너와 상대해 볼 테다.” 그 다음 말이 걸작이다. ‘아마 저놈도 나하고 같은 생각이겠지.’ 생명이란 어떤 것인가? 목숨 걸고 나아가야 할 저 먼 바닷길 아니던가? 헤밍웨이의 속삭임이 들려오는 순간!

     

     

    이야기의 절정에 이르기 한참 전이지만, 노인의 생은 그때부터가 절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휘파람새를 만나 몇 마디 나누다가 노인은 갑자기 고기가 요동치는 바람에 물속으로 빠져들 뻔 한다.

     

     

    쥐가 나고 줄에 쓸려 피가 나는 손! 손을 위하여 평소엔 즐겨먹지 않았던 다랑어 조각을 먹는 노인! 쥐가 나며 아픈 손 가득 바다 위의 고독을 느끼는 노인! 그러나 고개를 쳐다보니 구름이 피어오르고 그 아래로는 물오리 떼가 나타났다가 흩어지고, 그런 것들을 보고 있으려니 바다에서는 누구도 외롭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존재의 역설적 고독 속에서 드디어 고기의 실체를 확인하는데... ... 그놈은 노인의 배 길이보다 2피트는 더 길겠다는 걸 알아채는 노인! 며칠 동안이나 고기를 상대하느라 잠 잘 수 없는 노인의 한 생각을 엿본다.

     

     

    저게 몇 사람분이나 될까? 과연 사람들이 저걸 먹을 만큼 가치가 있을까? 아니지, 절대로 아니야, 고기의 태도와 대단한 위엄으로 봐선 저걸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고기, 노인, 바다, 피 말리는 경쟁의 줄, 그 위를 물구나무 서서 휘날리는 생명의 가치!

     

     

    마침내 어느 순간 튀어 오르는 거대한 고기를 상대하느라 손은 심한 상처를 입고 고래고기 살점 속으로 내동댕이처진 노인은 그 실체를 보며 다시금 격정의 사투를 예감한다. 거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기진맥진한 채로 마지막 힘을 모아 고기의 심장에 작살을 꽂아 넣었다. 고기가 뒤집힌다. 그러나 그 고기를 싣기엔 턱없이 작은 배! 모든 기력이 빠져나간 채로 노인은 귀향을 서두르지만... ...고기를 배에 매달고 나서 확인한 그 사실이 노인에겐 꿈처럼 느껴졌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의 커다란 행운일 것만 같았고... ...그러나 행운의 순간이야말로 진정한 한 순간이었을 뿐! 행운으로서의 삶이라면 그 의미가 무엇인가!

     

     

    노인이 잡은 고기 18피트(5.49미터)인 물질적 의미인가? 사투를 치룬 결과물의 의미인가? 아무도 찾을 수 없던 바다의 한가운데를 홀로 점령했던 한 인간이 선언했던 그 의식의 심층부인가? 삶의 승리를 정의했던 그 많은 철학자들의 가치 용기 때문인가? 예술작품을 어느 한 편향적인 의미부여로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소년과 주고받은 서로의 존재적 선물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소년이 흘린 눈물, 소설의 마지막은 노인의 기진맥진과 허기와 손의 상처와 거대한 뼈다귀로 귀환한 그 고기의 형태를 배치시키며 대단원의 막이 내려진다. 소년은 할아버지를 위해 동분서주한다. 어떤 사랑도 그 풍경을 대신할 수 없으리라. 둘만의 가슴을 채우며 영혼을 쓰다듬는 사랑(노인의 행운의 날처럼) 말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영위하다 사라지는 게 삶이라면, 그 둘은 바다를 향한 끝없는 사고실험(思考實驗)’을 했지 않았을까......아인슈타인이 시간과 속도에 대하여 그 빛을 상상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의 생각을 끌고 나아갔듯이... ...그러나 소년은 사고실험을 넘어서 틀림없이 할아버지가 그 고기를 만났던 바다의 한가운데로 실제로나아갔을 것이다. 우주에 수많은 인공위성을 발사시킨 아인슈타인의 후예들처럼, 할아버지 없이 할아버지를 그리워하며, ! 이때 할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좋았을 텐데... ... (그 애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했던 노인의 말의 변용처럼) 이건 그들의 삶을 통한 꽃의 의미, ‘노인이 소년이며 소년이 노인이다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레바퀴의 주인공 인간 헤밍웨이가 내게 던져준 선물이다. 덥석 받아 안는다.

     

     

    우리는 누군가가 그립다. 순간순간. ‘우리는 우리가 될 때 삶의 의미를 획득한다. 너는 너이며 나이기 때문이 아니랴. 또한 소설 [노인과 바다]는 삶의 공간과 시간을 더없이 균등하게 뜨개질한 뜨거운 은유다. 바다와 구름과 생명과 햇살과 고기와 인간을 대등한 선상에 놓은 작가의식의 결정체다.

     

     

    소년과 노인의 일상(시간의 축)집에서 바다로 떠남고기를 만남끊임없이 소년을 생각함고기를 만나 사투를 벌임(공간의 축)독백과 고독한 생명으로서의 자기 확인상어떼의 핏빛 갈취(이거야 말로 세상을 살아오며 확인하는 삶의 공허 아닐까)뼈밖에 남지 않은 수확물, 대단히 복합적인 플롯(사자꿈의 현현인 고기를 잡고 그 고기를 뜯어먹는 상어떼와 뼈라는 거대한그러나 인간들은 먹을 게 없는 결과물)돌아온 어부를 바라보는 놀라움휴식과 깊은 잠. 그는 영원히 늙지 않는 노인이며 청춘인 것이다!

     

     

    공간이라는 바다 바다라는 인생 사투의 고기잡이 목숨 건 투쟁 상처의 쓰라림 좌절 아닌 좌절... 스스로에게 던지는 바다 한가운데의 언어적 영감들(독자로서의)에 깊이 경도되는 체험들이 우리에게 주어진 절정체험이라고 감히 정리한다. 누구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아닌 고독한 체험을 노인은 시종일관 독백체로 노래하였다. 헤밍웨이의 언어, 뜨거운 태양빛 거대한 고기뼈 푸른 바다빛의 홍,,백 그릴 수 없는 것까지를 보여준 사고실험적 삶의 언어에 고개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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